드디어 숲속 종소리가
춤을 추기 시작했다
카드 소리와 함께
돌밭을 일구던 나의 성실한 부모는
랜드마크를 만들어 버리는 사람들이었다
나는 애만 보고
엄마는 나만 봤다
내 딸 표정은 천 개를 알면서
엄마의 표정들은
많이 떠오르지를 않았다
그때는 몰랐다
사진에 남은 어색한 얼굴들로만
엄마를 기억하게 될 날이
오는 줄은 몰랐다
엄마의 딸이
또 엄마가 되어 갔다
아이를 품은 딸의 시간이
너무 고되지 않기를
엄마는 사는 내내
자기 시간을 잘라다 붙였다
스물 네 번의 항암은
무쇠를 녹였다
엄마는 계절을 잊었다
바당 나가 맨날 울던 해녀 딸에서
세상 챙피한 것도
그렇게 많던 문학소녀에
미치고 팔짝 뛰게 좋던 선장 마누라에
오 계장에
시장통 생선 아줌마에다
나이 일흔에
선생님 소리를 다 듣고
이제 오애순 시인까지 해
인생 진짜 ‘고’ 해 봐야 아는 거지
중간에 때려쳤으면 어쩔 뻔했어
살아 보기를 천만 잘했지
(그래서 엄마는 지금 또 봄이야?)
또 봄이지, 봄
인생이
봄, 여름, 가을, 겨울로
가는 줄 알았더니
아니야
그냥 때때로 겨울이고
때때로 봄이었던 거 같애
수만 날이 봄이었더라
칠십 년의 별들이 모여
은하수가 되었다
반짝반짝한 순간들이
너무 많았어, 너무
칠십 년짜리 꽃동산이
여기 다 들었다
가슴에 묻어 온 무수한 것들이
비로소 만개했다
엄마는 지금
가장 아름다운 색으로 물들어 있다
오로지 당신께,
아홉 살적부터 여적지.
당신 덕에 나 인생이 만날 봄이었습니다.
당신 없었으면 없었을 책입니다.
다시 만날 봄까지.
만날 봄인 듯 살겠습니다.
너무나 어렸고,
여전히 여린 그들의 계절에
미안함과 감사, 깊은 존경을 담아.
폭싹 속았수다.